티스토리 뷰

일상

별 건 아니지만

언제나노랑_ 2021. 6. 14. 02:45

여러가지가 엉망일 때는 흘러가는 인생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몇가지 물건을 제자리에 가져다 둔다. 그리고는 빗자루질을 시작한다. 작은 집에 커다랗고 무거운 진공청소기를 쓰는 일이 여간 번거롭지 않아서, 먼지도 물도 잘 쓸어준다는 빗자루를 들였다. 청소기를 쓰면 어쩐지 내가 기계에 골탕먹는 느낌이다. 소음이 나는 동안 어서어서 일을 해치워야만 할 것 같거든. 하지만 비질은 내가 작업을 주도하는 기분이 든다. 가만히- 천천히 수행하는 것도 같고.

비질을 다 마치면 걸레질을 하고, 대강 건너뛰기도 한다. 그리고는 모아둔 빨래를 돌리고, 밀린 설거지가 있다면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쓱싹쓱싹 그릇을 닦는다. 컵과 그릇과 수저를 닦는 일은, 살림 중에서 내가 퍽 좋아하는 부분이다. 요리엔 젬병이지만 설거지는 좋아한다. 이 또한 일종의 수행이라는 느낌이 든다. 내가 사느라 먹고 마신 것들을 내 손으로 잘 닦아 말려두는 일. 설거지를 마치면 다 마른 빨래를 단정하게 개어서 제 가야할 공간에 가져다 둔다. 그러다보면 새 빨래가 다 돌고, 젖은 빨래를 베란다로 가져와서 팡팡 털어 건조대에 넌다.

집도 깨끗하고, 빨래도 다 했으면 기분 좋게 욕실로 가서 샤워를 한다. 욕실을 청소하는 주기는 정해놓지 않아서, 대강 살다가 청소하고 싶다고 느껴지거나 손님이 오기 전에 챙겨서 한다. 주기를 고정해놓고 지키는 것보다 내킬 때 하는 게 더 재미있으니까.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와 머리를 말리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나면 한결 개운하다. 뽀송하게 잘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마음도 정리된 듯 말끔한 기분이 된다. 아까까지 엉망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아니야. 깨끗하고 말끔하게 정돈되었어. 이제 다시 시작하자. 그래도 괜찮으니까. 이런 기분이 든다. 별 건 없지만, 별 것이 되는 일들. 

연남동, 목화씨라운지에서.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