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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24.04.21

언제나노랑_ 2024. 10. 6. 01:59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오늘 영광제일교회 주일예배 말씀 본문에서, 예수님은 마리아가 그의 형제 나사로를 잃고 우는 것과 또 그를 사랑했던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께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슬픔에 비통해하며 눈물을 흘리셨다는 대목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서, 마치 무방비로 해변에 있다가 파도를 맞은 느낌이었다. 파도에 휩쓸려 깊은 곳에 쓸려 내려간 기분이랄까.

나는 언젠가부터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죽어버렸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 어머니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 꾸역꾸역 살아가며 ‘산다는 것’의 형벌을 받는다고 느꼈다. 하지만 늘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고, 수고스러운 삶을 한 층 더 수고스럽게 하는 노동과 몇가지 약속과, 짐을 나눠지고 있는 동지들, 고마움, 나약하다는 부끄러움,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행복하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지탱했다.

세 번째 회기에서 상담사 선생님이 나에게 자살금지서약서를 작성하라고 했고, 나는 ‘저는 절대로 자살 안합니다, 저는 무척 살고 싶어요. 그냥 그런 생각을 하는 거에요’라고 말했으나 상담사는 그래도 작성하자고 했다. 나는 내가 주변을 걱정시킬만한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상담사 선생님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서약서를 작성했다. 정말 그런 마음을 품는다면 이런 서약서가 아무 의미 없지 않나요, 물었더니 상담사는 그래도 누군가가 당신이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인 거에요, 라고 했다. 나는 어쩌면 이런 서류가, 너 도망치고 싶을 만큼 괴롭구나, 그걸 인정해줄게. 위로할게. 이런 마음을 공증하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방식으로 위로가 된달까.

오늘은 예수께서, 슬피 우는 사람들을 비통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어 우셨다는 대목이 서러울 정도로 위로가 되었다. 교인들과 함께 있을 때는 나름 꾹꾹 참았다가 집에 오는 길에 터져나오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무당을 다루는 만화에 보면(내가 좋아하는 장르다!) 어떤 신령한 존재라도 사람의 생사에는 관여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나는 예수가 나사로를 살린 일이 세상의 어떤 규칙을 어겨버린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를 잃고 슬퍼하던 사람들이 얼마나 기뻤을까,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 너무나 분명한 절망 속에서 경험한 이 희망이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운 기쁨이었을까 생각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이태원참사 유가족들, 수많은 참사의 유가족들이, 살아 돌아온 내 가족을 본다면 얼마나 좋아할까, 얼마나 기뻐할까 생각했다. 너무나 분명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뀐다는 건 어떤 걸까 생각하면서. 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뀐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생각해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