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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4

언제나노랑_ 2024. 10. 6. 02:55

<2021, 여름이었다>

노랑조아

그 해 여름에 우리는
쇠막대기로 기둥을 세우고
비닐 천을 둘러 비를 막았지
아무도 반기지 않는 곳에서
일부러 크게 소리지르고 시끄럽게 굴었어

여느 하루가 얼마나 시끄러웠든
더럽고 소란스러웠든
밤이면 집으로 들어가 씻고 TV나 보면서
북아현동 김씨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그 해 여름에는
저녁이 내려도 영 익명이 되지 못했다
대도시의 밤은 어찌나 밝고 바쁜지
식어버린 해가 계속 떠있는 것 같더라

일단은 눕자 일단은 눈을 감고 쉬자
쿵쿵거리는 공사 소리 자동차 소리
익숙한 매연을 실컷 들이마시고 나면
새하루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출근을 하고

너는
차갑게 씻은 살구랑 요거트랑
샌드위치를 들고
또는 김밥이랑 물이랑 두유를 들고
심지어는 한약을 들고서
보기에도 시원한 미소를 하나가득 안은 채 찾아온다

멋모르고 사온 불오징어 김밥이 매워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먹던 모습
자려고 누우면 자꾸 그 맛이 생각나서
나는 연신 불오징어 김밥을 찾았지

얼음팩을 머리 위에 올리고 이마에 붙이고
뒷목에 올리고서도 참지 못했던 더위
근처 빌딩으로 경찰서로 화장실을 찾아 갈 때마다
불편하고 위축되었던 날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어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어
같이 커피를 마시고 콩국수를 먹고
평양 냉면을 먹으며 보낸 시간들 때문에

광화문 한복판을 지나며
우리가 머리를 누이던 자리를 지날 때면
가슴 한 쪽이 시큰거리는데
아직도 콩국수는 맛있고 평양 냉면이 좋더라

여름이 지나고
뭐가 남았을까 싶을 때면
싱그러운 너
불오징어 김밥
콩국수랑 평양냉면!

* 믿는페미 글쓰기 모임에서 이번에는 시 쓰기를 했다. 주제는 ‘여름이었다’. 한 달에 한 번 모이는데 이번에 벌써 21차 모임이다. 어리둥절… 이 장기 모임을 이끌고 있는 배지은님께 감사를…! 다들 다정한 합평에 뛰어난 사람들이라 글모임만 하면 가슴 따수워짐ㅋㅋㅋ 이번에 합평 들으면서 내가 일정한 흐름에 익숙해져 대강 비슷한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를테면 투쟁 현장 연대에 적합한 그런…! ㅋㅋㅋ 좋은 글을 쓰려면 설교를 하지 말아야 한다던 모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웃었다(설교 많이 하다가 글 망친다!ㅋㅋ). 신경써서 좀 더 다양한 흐름으로 써보고 싶다. 여하튼 시는 어려워서 그냥 행과 연을 많이 나눠 시로 만듦…! 히히

* 나 오전 11시에 감자탕 브런치 약속 잡는 여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