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조아 나의 집에는 싱크대가 있다. 수세미 열매를 말린 노란 수세미가 있다. 나의 집에는 W가 있다. 저녁밥을 같이 해먹고 커피잔을 닦는다. 그런 날이 있었다. 나의 집에는 무거운 바위가 있다. 보이지 않는 바위가 있다. 웃다가도 숨이 가쁜 날이 있다. 가을 야구 시즌이 시작되었다. 나의 집에는 TV가 있고 등받이 의자가 두 개 있다. 나란히 앉아 시즌 내내 부진한 야구선수를 응원하는 저녁이 있다. *불량언니 작업장 이성미 시인과 함께하는 시 워크샵에서. *초안을 쓰고, 선생님이 대대적으로 고쳐주셨다. *선생님은 내게, 마지막에 종합결론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하지만 모태신앙은 설교식 결론에 익숙하다고요). *내가 보는 야구 경기는 최강야구일 뿐이지만 시를 꼭 사실대로 쓸 필요는 없다😝 *정근우 선..
어제는 달이 동그랬다. 오늘은 엄마가 보고싶다. 엄마는 고단하다. 나는 배가 고프다. 내일은 고단한 엄마의 삶에 손을 좀 도우러 부천에 가기로 했다. 엄마는 맛있게 담가놓은 김치를 주려고 나를 기다린다. 지난 번에 쌀이랑 찬이랑 잔뜩 가지고 오셨을 때, 짐이 많은 나머지 김치통을 차 옆에 두고는 싣지 않고 출발해버렸다고 했다. 분명 집에서 김치통이 나갔는데 우리집에도 차에도 남아있지 않아 결론적으로 그렇게 추론했다. 우리 엄마가 맛있게 담근 김치, 누가 가져가서 기쁘게 먹기라도 하면 좋을텐데. 아무래도 버려지지 않았을까 싶어 슬프다. 자식을 먹이려는 어미의 사랑이 김치통에는 담겼지만 차에 실리지를 않아서, 길바닥에 뚱하니 서있다가 버려졌을 걸 생각하니. 사실 사랑의 대부분은, 타인에게 보내는 깊은 마음의..
윤진화, 잘 지냈나요? 나는 아직도 봄이면서 무럭무럭 늙고 있습니다. 그래요. 근래 '잘 늙는다'는 것에 대해 고민합니다. 달이 '지는' 것, 꽃이 '지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왜 아름다운 것들은 이기는 편이 아니라 지는 편일까요. 잘 늙는다는 것은 잘 지는 것이겠지요. 세계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읊조립니다. 당신이 보낸 편지 속에 가득한 혁명을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는 당신에게 답장을 합니다. 모쪼록 건강하세요. 나도 당신처럼 시를 섬기며 살겠습니다. 그러니 걱정마세요. 부끄럽지 않게 봄을 보낼 겁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다음 계절을 기다리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오늘처럼 복된 날, 고운 이들과 더불어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거리에서 만난 우리는, 온 평생을 거리에서 사셨던 예수님의 얼굴을 좇아 예배처소를 거리에 세우는 것이 좋았습니다. 나만 따뜻한 곳에서 더운밥 먹는 게 미안하다가도 초에 불을 붙여 십자가를 만들며 거리의 매연을 맡고 나면 주님 계신 곳에 온 듯 마음이 좋았습니다. 우리 그렇게, 같은 곳에서 같은 하나님을 찾다가 만나, 이제는 서로의 얼굴에 스민 신의 모습을 보며 사랑하고 아끼고 지켜주게 되었습니다. 어제는 홀로 집으로 돌아갔으나 이제는 나의 신부 나의 신랑과 함께 돌아가며, 하루의 고단함과 잠깐의 절망과 영원한 우리의 소망을 나누겠습니다. 저 이동환은 신부 김은선을 아내로 맞아 그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며 죽는 날까지 신의..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일구고 있는 이들, 정직하게 노동하는 이들의 귀함과 수고로움을 아십니다. 하늘을 날아 이곳저곳에 가닿는 비행기, 누군가는 반가운 이를 만나러, 누군가는 생전 처음 해보는 여행의 설레임을 안고 머무르는 곳에, 노동하는 이들의 살뜰한 수고가 어려있습니다. 모포를 정리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빠르게 청소하고 실내를 소독하고, 그 근실한 노동 덕에 비행기는 새것처럼 깨끗해지고, 누군가는 또 다시 어디론가 떠나는 설레임, 또는 돌아가는 그리움을 안고 안락함을 누립니다. 이 모든 것은 노동이 있기에, 노동자가 있기에 가능합니다. 회사와 노동자와 승객 모두가 서로 이어져, 같이 만드는 역사입니다. 하나님, 그렇지만 기업은, 함께 일하는 노동자를,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이 가능하..
노랑조아 그 해 여름에 우리는 쇠막대기로 기둥을 세우고 비닐 천을 둘러 비를 막았지 아무도 반기지 않는 곳에서 일부러 크게 소리지르고 시끄럽게 굴었어 여느 하루가 얼마나 시끄러웠든 더럽고 소란스러웠든 밤이면 집으로 들어가 씻고 TV나 보면서 북아현동 김씨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그 해 여름에는 저녁이 내려도 영 익명이 되지 못했다 대도시의 밤은 어찌나 밝고 바쁜지 식어버린 해가 계속 떠있는 것 같더라 일단은 눕자 일단은 눈을 감고 쉬자 쿵쿵거리는 공사 소리 자동차 소리 익숙한 매연을 실컷 들이마시고 나면 새하루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출근을 하고 너는 차갑게 씻은 살구랑 요거트랑 샌드위치를 들고 또는 김밥이랑 물이랑 두유를 들고 심지어는 한약을 들고서 보기에도 시원한 미소를 하나가득 안은 채 찾아온다 멋모르고..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오늘 영광제일교회 주일예배 말씀 본문에서, 예수님은 마리아가 그의 형제 나사로를 잃고 우는 것과 또 그를 사랑했던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께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슬픔에 비통해하며 눈물을 흘리셨다는 대목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서, 마치 무방비로 해변에 있다가 파도를 맞은 느낌이었다. 파도에 휩쓸려 깊은 곳에 쓸려 내려간 기분이랄까. 나는 언젠가부터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죽어버렸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 어머니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 꾸역꾸역 살아가며 ‘산다는 것’의 형..